체면 때문에
결혼 시즌이라 그런지 요즘 부쩍 결혼식장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엇그제 주말에는 친한 고등학교 동창이 며느리를 보는 날이라서
집사람과 함께 삼성동 공항터미널에 다녀 왔다.
아내가 관절이 시원찮아서 지하철 타기를 꺼려해서 부득이 차를 갖고
출발했다. 집에선 시간 넉넉하게 출발했지만 올림픽대로를 거처
도산대로 테헤란로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가 체증이 심해서 간신히
예식 시작전에 차를 댈 수 있었다.
아내에게 축의금 봉투를 넘겨주며 먼저 식장으로 가도록 하고
결국 나는 주차를 하고 좀 늦게 식장에 도착했다.
예식을 지켜보다 문득 아내에게 무심코 넘겨준 축의금 봉투가
다른 예식장 가려고 함께 갖고 나온 축의금 봉투와 바뀌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얼른 안주머니에 다른 축의금 봉투를 확인해 보았다.
이런!
가까운 친구라고 평소보다 조금 많은 돈을 넣은 봉투가 바로
내 주머니에 있는 것이 아닌가?
부부가 같이 왔고, 예식비도 비싼 곳이라 생각하고 준비한 봉투는
그대로 있고 또 다른 예식장에 낼 봉투를 아내에게 준 것이다.
큰 결례다 싶어서 나는 바로 예식 집전 장소를 나와 접수카운터로
가서 다시 축의금 봉투를 내 밀었다.
큰 돈은 아니지만 결국 체면 때문에 축의금을 두번 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틀만에 그 친구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 덕분에 혼사 잘 치뤘네. 그런데 축의금 봉투가 두개던데? "
" 아 이사람아! 내 것 하나, 집사람 것 하나, 따로 따로 한거지! "
그렇게 대답을 하고 넘어 갔다.
경우는 다르겠지만 이런 부조금과 관련하여 비슷한 실수가 종종
발생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나도 큰자식 결혼식을 마치고 축의금을 정리하다 보니
속이 빈 봉투를 받기도 했고, 축의금으로 받은 수표가 지급정지된
수표라고 추심 거절이 된 경우도 있었다.
그 후로는 나는 축의금을 대신 부탁 받으면 실수하지 않으려고
재삼 챙기게 되고, 가능하면 현금으로 부조금을 준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품앗이란 표현도 쓰지만 부조금이란게 이렇게 부담스럽다.
내가 먹는 밥값이라고 부담 없이 생각하려해도 호텔같은 곳에서
하는 예식엔 망설여 지기도 한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다른 인편에 보내기도 하고, 송금이나 우편환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세상 살면서 이렇듯 체면 때문에 부조나 부조금
액수를 고민하는 경우가 참으로 빈번하니.
고지서처럼 날아오는 청첩장과, 전화, 문자로 받는 혼사 안내는
가끔은 신경을 건드리기도 한다.
우리의 부조금 문화도 조금은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