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딘버러 성은 영국 활실의 휴양소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이라고 한다.
에딘버러 성을 관람하고 성내 카페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오루 4시에 맞춰 홍차 혹은 커피와 함께 간식으로 빵이나 쿠키 등으로 구성된
3단 간식 바구니가 제공되었는데 점심 식사를 한 지 얼마 되지않아 홍차만
두 잔을 들고 간식은 들 수가 없었다.
홍차가 유럽으로 처음 들어온건 16세기지만 동양에서 차를 직접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비싼 값을 지불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17세기 동인도 무역회사가
설립되면서 홍차의 수입이 늘어나기 시작하며 영국 사교문화의 필수품이 됐다.
동양에서 식용이자 약용으로 쓰이던 귀한 차가 영국 왕족의 테이블에 최고의
음료로 오르게 된 것은 1662년 포르투갈의 캐서린 브라간자 공주 덕택이다.
영국의 찰스 2세와 정략결혼을 하며 결혼지참금으로 홍차와 설탕을 여러 척
배로 싣고 왔던 것이다. 이후 상류사회 품위의 트렌드로 부상한 차는 애프터눈
티로 최고급 이미지를 하나 더 보탰다. 오후 3시~5시, 즉 점심과 저녁 사이 배가
출출해질 무렵에 차를 매개체로 한 번 더 사교 모임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가벼운 빵을 곁들인 ‘하이 소사이어티 티 파티’였던 것이다.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해진 그레이 백작은 1806년 중국을 방문한
로버트 잭슨이라는 상인에게 스모크 향이 나는 정산소종을 선물받게 된다.
백작이 차를 마음에 들어한 것을 안 로버트는 재주문이 어려워지자 고민에
빠지고 그를 위해 비슷한 맛을 내기는 해야겠고, 훈연 향 대신 베르가모트 향으로
얼버무려 얼 그레이 홍차를 고안했다. 제조사는 트와이닝 사였는데 회사는
오리지널 향을 구할 수 없어 다른 것을 첨가하는 블렌딩 방식을 사용했다.
백작 이름이 붙은 얼 그레이는 가향차의 시조로 지금까지 고공 행진 중이다.
지나친 충성심이 빚어낸 신제품 출시였다.
뭔가 첨가된 홍차가 인기를 누리자 식료품상 주인인 포트넘 앤 메이슨도
얼 그레이 같은 제품출시에 뛰어들게 된다. 출발은 중국의 홍차, 장산소종
‘따라 하기’였는데 나중에는 한술 더 떠 훈연 향에 베르가모트 향을 더해,
묘하면서 강한 향을 만들어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시도였다.
이렇듯 중국의 차는 영국인에게는 동경과 우월의 대상이었다.
도전과 장사꾼 기질이 합쳐져 특화된 패키지 차를 선보인 것이다.
엉뚱 레시피로 명품이 탄생된 본보기다.
다른 나라보다 영국이 유독 홍차를 더 즐기고 소비하는 이유는 기후조건이
비가 자주오고 습한 날씨가 많기 때문에 따듯한 차를 선호하게 되었고 또한
기름진 음식을 끝내고 깔끔한 홍차로 마무리하는 문화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영국에서의 우연히 마주했던 얼 그레이 홍차 맛이 다시 그리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