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만들어진『 마지막 황제 』라는 영화가 흥행한 적이 있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의 삶을 조명해서 세계적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우리 민족과는 수천년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던 여진족의
후예들이 세운 청나라. 우리가 오랑캐라며 무시하였고, 고구려 시절부터
조공을 받기도 했고 우리 韓族의 피가 섞인 종족이기도 했던 여진족, 즉
만주족이다. 그들이 17세기초 세운 청나라는 일본의 만주 침략과 함께
1912년 부의황제가 퇴위함으로써 청나라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우리와 끝없이 대치와 전쟁, 그리고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인한
숱한 치욕의 과거를 우리에게 남겨 준 만주족이 아니였던가?
아직도 좋지않은 의미로 쓰고 있는 화냥년(還鄕女)이란 말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성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돌아온 부녀자들을 이르던 말이요,
또 그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을 胡奴子息이라며 멸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만주족의 언어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란다.
만주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지에 사는 노인들 일부만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이미 천만이 넘는 만주족들은 중국의 동화정책에 의해
중국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만주어가 반세기만에 사라지게 된 것이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다가 결국 삼전도로 내려와 맨땅에
이마를 찧어가며 군신의 예로 굴복했던 그 치욕의 자리에 세워진
삼전도비는 지금도 그대로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치욕을 남겼던 만주족들이 이젠 멸망해 버린 것이다.
중국에는 60개 가까운 종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지만 同化정책으로
이제 모두 한족으로 단일화 되고 있다. 중국어와 한자로 언어와 문자가
통일되면서 소수민족들은 漢族으로 동화되고 있고 티벳, 몽고 같은
나라들도 머지 않아 같은 운명을 걸으리란 건 명약관화한 일이다.
최근 수백년 동안 우리와 치열한 다툼을 별였던 청나라 만주족의 역사는
결국 한족의 역사가 되고, 과거 우리의 삶의 터전이였던 만주 벌판은
한족의 역사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중국이 벌이고 있는 동북공정도
이렇듯 자연스럽게 역사의 왜곡으로 끝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中華란 의미가 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얼마전 항가리를 여행한 적이 있다. 항가리인들은 우랄 알타이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마자르족으로 아시아계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 대이동을 통해 항가리에 정착한 아시아 민족이지만 그들의 얼굴에선
완연한 서양 백인의 모습 뿐이지 동양적인 모습을 조금도 찾을 수 없다.
수천년의 서양인들과의 교류와 혼혈로 인한 서구화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항가리인들은 그들의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랄 알타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아시아계 민족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어느 민족을 구분 짓는 기준은 그들이 과거 살아온 땅이나 계승한
역사나 문화가 아니라 그 종족이 사용하는 언어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자기 민족의 말과 글을 잘 가꾸고 보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럽고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결국 한 민족의 언어란 그 민족이나 종족을 구분 짓는 잣대요
흥망성쇄를 규정하는 거울이 아니겠는가 ?
선조들 덕분에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이 한반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우리 민족도 결국 우리의 말과 글을 제대로 건사해야만
장래어 펼쳐질 수만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외래어의 홍수와 오염된 언어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의 아름다운 언어를 올바로 지키고 물려 주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임이 아닐까?
2007.3.23.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기꾼들의 천국 (0) | 2011.01.30 |
---|---|
젊은 그대가 좋다. (0) | 2011.01.30 |
봉달이 대단하네. (0) | 2011.01.30 |
春秋筆法 (0) | 2011.01.30 |
바보상자 들여다 보기 (0) | 2011.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