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부터 지중해 연안을 지배해 왔던 이스람 왕조는 이베리아 반도
남쪽의 안다루시아 지방을 약 8세기 동안 통치해 왔다.
20여년전의 국산차 이름으로 쓰였던 지명으로 친숙한 도시 그라나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아래 분지에 형성된 도시 그라나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붉은성'이라 이름 붙여진 알람브라 궁전이 자리잡고 있다.
안다루시아 지역을 마지막으로 통치했다는 이스람의 나사리 왕조가
코르도바 지역을 카도릭 왕조에게 넘겨주고 산악지역인 그라나다로
밀려나와 축조한 궁전이다. 성벽은 2km, 길이가 740m, 왕궁의 넓이는
22000㎡에 달한다. 14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3개의 정원을 기본 축으로
하여 설계되었고, 내부는 왕궁, 헤네랄리페 정원, 알카사바와 카롤로스
5세가 이스람으로부터 왕궁을 접수하고 왕비와 함께 살기 위해 축조를
시작했으나 지진으로 축조를 중단한 궁전이 자리잡고 있다.
쇄락하기 시작한 이슬람 왕조였지만 건물 내부의 섬세한 모자이크 문양
장식 등은 빛은 바랬지만 아직도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그 당시
만들었다는 찜질방 비슷한 사우나 시설이 아직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여러 왕비와 시녀를 거느리며 살았던 보압딜 왕의 영화를 짐작케 한다.
아벤세르헤스 가문의 미청년과 밀애에 빠진 한 왕비를 응징하기 위해
보압딜왕은 아벤세르헤스 가문의 청년 36명 모두를 초청하고 입궐하는
대로 참수를 하여 머리들을 왕비의 침실의 분수대에 사흘 동안이나
버려두어 분수대가 피로 물들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비극의 방'이 있다.
방바닥 분수의 대리석은 아직도 핏빛이 배어 있는 듯 붉은 색을 띠고 있고.
궁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왕의 여름별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는
헤네랄리페 정원이 잘 복원되어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성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였다.
그러나 스페인 카도릭 왕조의 국토회복운동은 이스람 왕조를 몰아내기
위한 압박정책을 계속하였다. 알람브라 성은 성 외곽 포위를 통한 물자
반입 차단및 장기화 작전에 못이겨 나사리 왕조는 항복을 하고 보압딜
왕은 가신들을 이끌고 아프라카 모로코로 떠나게 된다.
그날이 바로 1492년 1월 2일이였고, 공교롭게도 내가 그곳을 방문한 날도
1월 2일이였다. 1492년은 컬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했던 바로 그해이며,
그때부터 스페인은 8세기부터 약 800년 가까운 이스람 지배를 벗어나
기독교를 국교로하는 근대 스페인이 탄생되는 전기를맞게 되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했던 사람들, 그 흐름에 휘말려 영욕의 삶을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역사의 현장들, 수세기 혹은
수천년의 시공을 넘어 뒤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
역사의 흥망속에 숨겨진 이야기들과 함께 고단한 삶에 지친 우리들의
내면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20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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