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수첩

바로셀로나에서 만난 가우디

tycoons 2011. 1. 30. 16:38

 

 

사마란치의 고향이라는 바로셀로나는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중앙정부와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우며 독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카타루니야 지방의 주도이다.
프랑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남쪽 사람들과는 달리 체구가 전형적인
서양인의 모습을 보인다. 우리의 황영조 마라토너가 바로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우승으로 더욱 친근한 올림픽 경기장이 있는 몬주익 언덕에
올라 보면 바르셀로나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도시 한 가운데 우뚝선 첨탑이 바로 눈에 들어 온다.
인쇄 매체 등으로 통해 우리 눈에 익숙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1882년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125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사가 계속되기
있는 이 성당은 전통적인 고딕, 바로크 양식의 모양과는 전혀 다른
변화를 시도하여 나무 모습을 이용한  설계와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한
파격적인 외관을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 현대 건축가 가우디가 익랑공사에 참여하면서 부터이다.
1884년부터 1926년 교통사고로 죽을 때 까지 성가족 성당의 설계와
공사에 참여하여 최초로 지하제실(地下祭室)을 완성시킨 후 앱스(apse)의
외벽면, 부속유치원, 그리스도의 강림을 상징하고 있는 동쪽 트란셉트의
파사드(facade;집의 정면)와 4개의 탑 등을 완성시켰다.
공사중임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고 입장료 수입도 만만치
않으리란 생각이다. 바로셀로나의 관광수입이 도시를 먹여살릴 수
있는 정도라면 거기엔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역할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 명의 건축가가 바로셀로나라는 도시의 현재와 미래의 풍요
로움을 보장해 준 영웅이 아니겠는가 ?
도시에 산재한 가우디의 건축 작품들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고
구엘공원에서는 그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재확인할 수 있였다.
한 명의 천재가 수만명을 살려 먹일 수 있다는 모 그룹 회장의 지론을
바로셀로나란 도시가 증명하고 있었으니.
그가 세상을 떠난지 80년이 지났지만 그가 남긴 건축예술의 진수를
나는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2007.1.8.

'여행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궁전에서 듣는 애국가  (0) 2011.01.30
VIVA VINA를 가다  (0) 2011.01.30
또레도 대성당에서  (0) 2011.01.30
알람브라의 추억  (0) 2011.01.30
스페인의 올리브나무  (0) 2011.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