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他人能解

tycoons 2022. 5. 17. 07:25

전남 구례 토지면에는 영조때 삼수부사와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胄)가
지은 운조루(雲鳥樓)라는 고택이 있다.
雲鳥樓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가사중에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무심한
구름은 산골짝을 돌아 나오고, 날다 지친 저 새는 둥지로 돌아온다)는 구절의
머리글자 雲鳥를 따서 지은 택호라고 한다.
타인능해' 는  바로 그 雲鳥樓의 쌀뒤주 덮개에 새겨진 글자이다.
"아무나 열 수 있다"는 의미로 운조루의 주인이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커다란 뒤주를 사랑채 옆 부엌에 놓아두고 끼니가 없는 마을 사람들이 쌀을
가져가 굶주림을 면할 수 있게 했단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쌀을 퍼줄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의 자존심을 생각해
슬그머니 퍼갈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배려는 운조루의 굴뚝에서도 드러난다.
부잣집에서 밥 짓는 연기를 피우는 것이 미안해 굴뚝을 낮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뒤주는 열고 굴뚝은 낮춘 운조루는 6·25전쟁 때 빨치산의 본거지였던
지리산 자락에 있었지만 화를 당하지 않았으니 대대로 나눔을 실천했던 정신이
운조루를 지킨 셈이다.
우리 선조들은 자손을 위해서라도 이웃에 덕을 베풀었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 못지않게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함으로써 그 덕이
자손에게 미치도록 했던 것이다.
250년이 지나도록 오늘날까지 가문이 번창한 것은 오로지 분수를 지키며
생활하고, 이웃을 돌보던 마음이 전승되었기 때문이리라.
가난한 이웃 사람이 쌀을 꺼내 끼니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음덕을 베풀고 적선을 하는 것이 돈을 가진 자의 도리임을 보여 주었던
류씨 문중의 남다른 이웃 사랑을 느끼게 한다.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나 이웃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넉넉한 선비정신이
바로 타인능해(他人能解)가 아니였을까?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걸리 예찬  (0) 2022.08.22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0) 2022.08.21
코로나 이야기  (0) 2022.03.22
소확행  (0) 2022.03.14
관절이야기 - 퇴원  (0) 202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