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적으로 술을 좋아하다 보니 술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뛴다.
술을 마셔도 정신은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살다 보니 그래도 실수는 많지 않은 편이다.
나의 아버지는 술을 좋아 하셨다.
내 어린 시절 시골에선 삶이 팍팍하던 시절이였다.
매일 아침 잡곡밥이지만 점심 먹을 것 까지 가마솥에 넉넉히
지어서 밥을 짓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아침엔 따듯한 밥 한 그릇을 먹고 도시락을 챙겨 학교에 갔지만
주말이나 방학 때의 점심은 항상 찬밥을 먹곤 했다.
여름엔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 된장에 고추를 찍어 먹던 기억,
겨울엔 양푼에 김치와 깍두기를 넣고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넣고
비벼 온 가족이 함께 먹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저녁은 언제나 쌀을 아끼기 위해 칼국수로 해결하곤 했다.
손님이 오거나 제삿날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무조건 국수가
저녁 메뉴였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칼국수를 가끔 먹지만 어린 땐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였다.
그 당시엔 삶은 칼국수에 호박이나 김치를 넣고 간장으로 간만 맞춘
정도라 매일 먹어 식상한 음식이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도 가장이셨던 아버지 입장에선 살림을 아껴
자립의 기반을 닦으시려는 의지의 일환이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지만 술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항상 가양주를 만들어 드셨다.
쌀을 고두밥으로 지어 누룩을 섞어 만든 막걸리가 떨어지질 않았다.
1950~60년대 초엔 식량이 부족하여 밀주 단속이 심했고, 수시로
공무원들이 시골 산골 마을까지 단속을 나오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술 항아리를 집 밖의 으슥한 곳에 숨겨 놓고 술이
익으면 동이로 퍼다가 체에 걸러서 아버지에게 드리곤 했었다.
그리곤 아까운 술 지게미는 사카린 성분의 당원을 풀어 달착지근
하게 하여 형제들에게 주시곤 했다.
많이 먹은 날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비틀거리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배 고프던 시절 곡기가 남아있는 술 지게미를 밥대용으로
생각하신 어른들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술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 때면 땀 흘리며 힘든 일을 할 때가 참 많았다.
모내기, 피사리, 꼴 베기, 고추 따기, 퇴비용 풀베기 등 어린 나이에
감당하긴 벅찬 농사일이다 보니 땀 흘리고 난 후 맹물을 마시기 보단
자연스럽게 막걸리가 갈증 해소에 으뜸이란 걸 일찍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막걸리와의 밀당은 70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음료수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음료수 한병 값이면 막걸리도 한병을 즐겁게 마실 수 있으니 말이다.
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주위 사람들에게 유쾌하지 않은 누룩 냄새가
조금 부담스럽지만 갈증 해소 음료라 생각하고 과음은 않는다.
그렇지만 열심히 땀 흘리고 난 후 마시는 막걸리 한잔, 마음 통하는
지인들과 유쾌한 자리에서 부딪치는 막걸리 한 사발의 여유....
이렇게 느리게 사는 노년들에겐 정말 정감있고 부담없는 술이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엔 김치 부침개에 막걸리 한잔이 제격일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