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수첩

차창 너머로 본 유럽 - 프라하의 KOREA HOUSE

tycoons 2006. 1. 6. 20:00

겨울은 유럽 관광객에게는 바쁜 일정이 될 수 밖에 없다.
아침은 여덟시나 돼야 밝아져서 오후엔 네시가 조금 넘으면

어두워 진다.첫째 날은 시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일찍 일어난

시간이 새벽 1시도 안돼서였다. CNN 뉴스는 우리나라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는 날조되었고,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한다는

뉴스가 매시간 머릿뉴스로 보도되고 있었다. 얼마전 김수환 추기경께서

 " 하나님께서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 좋은 머리를 주셨다."며 눈물을

쏟는 모습이 떠올라 착잡하기만 했다. 유럽 쪽에 방송되는 CNN의

실시간 주가지수엔 일본, 홍콩, 싱가폴의 지수들은 소개되지만

코스피지수는 빠져 있는 걸 보면 해외에서 보는 우리나라의 경제력을

보는 시각은 그리 대단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국내에서 방영된 '프라하의 연인'으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체코의 수도 프라하.5∼6세기 무렵 슬라브인들이 들어와 9세기말

프라하성을 축조를 시작으로 10세기엔 체코인 민족왕조 프셰미슬家에

의해 중심도시가 되었으며, 독일인과 ·유대상인의 활동으로 유럽과

동유럽을 잇는 주요 교역지가 되었던 곳. 14세기 룩셈부르크家의

카를 4세가 즉위하여 1348년 프라하대학 설립, 새로운 시가(市街)를

건설하면서 오늘날 같이 유럽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68년 1월 <프라하의 봄> 으로 불리는 두브체크의

자유화운동이 일어났으며 1990년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93년 1월 

체코의 수도가 된 곳이 프라하이다.
 
프라하 시내로 들어오는 동안 수많은 외국 진출기업들의 광고판,

간판을 볼 수 있었고, TESCO, 까루프, TOYOTA, SHELL 같은 

외국기업 간판들 뿐만 아니라  SAMSUNG, LG, KIA MOTOR 등

우리나라 기업 광고판도 눈에 띄었다. 프라하의 봄,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체제 변신, 1993년 체코, 슬로바키아 분리 독립 등의

변혁 속에서도 체코라는 나라는 급속한 경제 발전, 성장을 이룩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수백년에 걸쳐 축조했다는 프라하 궁전엔 한 곳에선 지금도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어 근위병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금을

만들기 위해서 연금술사들이 묵었다는 골목길 Golden Lane의  

22번째 집에는 '변신' 을 집필한 카프카가 묵었었다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1370년대에 카를4세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불타바강위에 건설된 카를다리는 폭이 10m에 길이가 300m가 넘는

다리로 600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되고  있고 관광객으로 붐비는

프라하의 명소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다리 난간에 설치된 예술

조각품들이 아직도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슬라브 민족의

예술성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우리는 개성의 선죽교가 비슷한

시기의 다리로 남아 있지만 카를다리와 비교한다면 도랑을 

건너는 다리 정도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구 시청사 벽면에

설치된 천문시계도 14세기에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이조시대 장영실이 만들었다는 해시계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장영실이 명나라 유학을 다녀오며 서양의 앞선 과학

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만든 우리 버젼의 천문시계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한식당 (KOREA HOUSE)엔 남다른 분위기로

방문객들을 맞고 있었다. 사방 벽면에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의

낙서판으로 개방되어 있었고 바닥에서 천정높이까지 온통 기념

낙서로 뒤덮여 있었다. 그 많은 낙서들 중에서도 내 눈에 들어온

개는 눈을 찌프리게 했다.  「 XXX 시의회 연수단 17명 프라하

방문기념 」, 「 OO시청 □□□외 18명 다녀감 」 「△△시의회,

AAA, BBB,CCC,....」하며 일행의 이름을 전부 적어 놓은 낙서도

보였다. 이런 낙서들이 많이 눈에 띄는 걸 보면  지방 자치단체나,

공무원들의  해외 시찰이나 연수가 무척 잦은 듯 싶다. 

연수를 마치고 들른 관광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공감을 한다. 그렇지만 궂이 지방자치단체, 관공서 이름을

거명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써 넣어야 직성이 풀린단 말인가 ?

구의원도, 공무원도 똑같은 사람이고 내 돈 내서 관광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색안경을 쓰고

바라다 보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관과해선 안될 일이다.  

똑같이 해외 관광을 나온 입장에서 왈가왈부할 처지는 아니지만

일반인들 보다  처신에는 조금은 신중해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몇년 동안 그  조그만한 음식점에 들러

낙서를 한 사람들의 숫자가 족히 수천명은 넘으리라는 생각에

이르면 많은 우리 국민들이 해외를 여행하면서 새롭게 느끼고

배우며 성숙한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선 낙서의 흔적들이 또 다른  의미로 받아 들일 수 있었음에

스스로 위로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