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수첩

마니산에서

tycoons 2004. 3. 24. 10:46

 

 

지난 일요일 아내와 함께 강화도 마니산을 올랐습니다.
도시의 찌든 삶의 먼지를 훌훌 털어버리고,꿈틀거리는 봄과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고 싶은
욕심 때문이였습니다.
해발 460 미터 정도의 나지막한 산이라 츄리닝, 운동화 차림으로 편하게 떠난
산행길이였습니다.
산 중턱을 오르면서 나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 부부 3쌍이 지팡이에 의지하며 하산하고 있었습니다.
나와 아내는 그들을 비껴서  무관심하게 지나쳐 정상을  올랐고, 하산길에 다시
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잠시 그들의 하산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았습니다.
편안하고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하산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어두운 그림자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그들이 내려가던 곳이 돌계단이라 그래도 편하게 내려가는 듯 했습니다.
남편인듯한 사람이 여자분에게 하산 요령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 허리를 곧추 세우고, 거리감만 느끼면서 발을 내 디디라구 ! "
지팡이 하나의 감촉에 의지하며 돌무더기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분들은 아마 오전에 마니산 등산을 시작하여
등산을 마치고 그때까지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일반인들은 눈으로 멋진 풍경을 즐기며 등산의 묘미를 만끽하기 위해 산을
오른다고 한다면 시각을 잃은 그 분들이 산을 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을 해 봤습니다
가파르고 돌무더기에 울퉁불퉁한 산길, 변화 무쌍한 장애물, 또 다른 인파들의
뒤섞임 속에서 그분들의 행보는 절대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 분들이
단지 운동을 목적으로 산을 오르지 않았으리란 것은 분명합니다.
 
아마 그 분들은  마니산을 직접 등산하며 발과 손으로, 가슴으로, 머리로 느끼고
상상하며  마음속의 백두산을 올랐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상인의 편견사회의 냉대, 왜곡된 가치관을 뛰어넘어 그분들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도전하며 최선을 다하는 일상의 모습이
참으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인간의 의지 앞엔 결코 불가능은 없다는 멧세지를 그 분들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편하게 사는 법에 익숙하고, 이기심으로 가득한 일상에서 남 탓만 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진솔한 삶의 모습에서 내 자신의 삶의 방식도 바뀌어야겠다는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월요일 새벽 전철을 오르며 역구내 바닥의 요철보도 블록을 밟아보며
다시 한번 그분들을 뜨거운 삶의 의지를 느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