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강남에 가면

tycoons 2009. 5. 11. 12:47

 

나는 옛 직장동료들과의 만남을 위해  한 달에 몇 번은 강남역 근처에 가곤  한다.

몇 개월 전부터 강남역 8번 출구에서 테헤란로 쪽으로 향한 인도를 뜯어 고치는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수십년 된 프라타나스 가로수를 베어낸 자리에 시멘트로

화단을 만들고 그 화단에 느티나무 가로수로 식재를 했다.  날림이나 다름없이

얕게 땅을 파고 만든 시멘트 화단은 오히려 시민 통행에 지장을 줄 뿐만 아니라, 

화단에 옮겨 심은 느티나무 또한 제대로 착근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

거기에다가 고급 석재로 덮었던 가로 블럭들을 다 제거하고 다시  또 무슨

공사를 하려는지  요즈음은 보도를 파 제끼고 있다.

 

돈의 여유가 생기면 몸을 가꾸고 집을 화려하게 꾸미고 싶은 게 인간들의

공통된 욕망이라면 일반 관공서 사람들이라고 다름이 있겠는가?

수십층에 이르는 지자체 청사를 신축하고, 의원회관, 구민회관,문화센터,

다목적회관 등을 경쟁적으로 신증축하는 것이 유행이 아니던가? 

좁디 좁은 대한민국 땅덩어리에 지방자치제란 걸 도입하고 나서부터

인기 몰이, 전시 행정으로 인한 중복 투자, 낭비되는 국부를 어찌 상상

수 있을까마는 그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벌이는 강남역 주변의

인도 정비 공사 또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멀쩡한 가로수의 수종을 바꾸고, 고급 석재 보도블럭을 교체하고 있으니 

이 무슨 요상한 탁상행정이고 낭비란 말인가?

 

국부는 자꾸 고갈되고, 국민 GNP는 만불대로 다시 추락하고,  제 2, 제3의

금융위기를 걱정하는 가운데 , 재원이 남아도는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동네

지자체는 그렇게도 돈 쓸 곳이 없는가 보다.

평범한 시민의 눈에 보이는 허상과,  실제  행정을 집행하는 관청의 입장,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실상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행정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누추한 뒷 골목 , 관내 외곽 주변의 비닐하우스촌 정비, 불우한 이웃들을

위한 복지시설 확충같은 것이 강남역 주변  인도 정비 사업보다 훨씬

중요하고 우선해야 되지 않을까?

아름드리 프라타나스 나무가 베어지고, 그 잘 다듬고 반질 반질하게 갈아서

깔았던 석재 보도블럭들이 철거되는 모습에  그져 망연자실할 뿐이다.

 

지자체들은 앞을 다퉈 직원들을 위한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서 현지에 한인식당의 벽면에다 해외연수 기념 낙서나 하고

돌아오기 보다는,  유럽 여러 도시들의 프라타나스 가로수길도 유심히

살펴 보고,  고색창연한 도시 뒷골목 돌 블럭 마차길이라도 밟아 보면서

세월의 무게를 느껴보고 오면 어떨까?
졸속스럽고 즉흥적인 행정으로 수십년 된 가로수들이 잘려나간 현장을

보면서 왜 이리 속이 쓰리고 아프기만 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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