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전 한 지인으로 부터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다.
함께 테니스를 치며 알게된 사람으로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고나선 십수년 넘게
연락이 없던 사람이다. 이런 저런 안부를 묻고나선 다짜고짜 주소를 알려 달란다.
주소를 알려주자 얼굴 한 번 보자며 바로 전화를 끊는 것이다.
전화를 건 이유를 짐작은 가지만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본인 입으로
자식 혼사가 있어서 청첩장으로 보내려 한다는 말은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나흘만에 청첩장이 배달되었다.
어제는 대학동창의 아들 결혼식에 다녀왔다.
해외주재를 오랫동안 하기는 했지만 대학졸업 후 30년 가까이 만나본 기억이 없는
동창인데다가 강남의 특급호텔에서 하는 결혼식이라 축의금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반가운 동창들 얼굴이라도 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갖고 참석했다.
그러나 겨우 몇 명 정도 밖에 보지 못하고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오늘도 또 대학동창이 하나가 천여명이 넘게 수용하는 특급호텔에서 사위를 맞는다.
집안에 행사가 있어 어제 만난 동창에게 축의금 전달을 부탁하고 가지 않기로 했다.
내일은 친한 친구가 며느리를 맞게 돼서 아내와 함께 결혼식에 참석할 계획이다.
이렇듯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수많은 경조사에 참석하고 얼굴 내밀면서 서로
교류하며 ,품위를 유지하기도 하고, 체면을 지키려 애를 쓰기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애경사 챙기는 일도 결코 쉽지만은 아닌 일이다.
시간을 내야 되고 부조금도 조금은 거들어야 된다.
가끔은 가깝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배달된 청첩장을 받고 나면 꼭 청구서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고민을 하기도 한다.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품앗이 개념으로 생각하고 꼬박 꼬박 저축하는
심정으로 애경사를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애경사에 별로 참석을 않다가
본인 자녀 혼사시에는 사방에 청첩을 내는 사람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세상이 투명해지고 인간의 사고 수준도 성숙화되었다고 본다면 이젠 우리의
혼례문화도 조금 업그레이드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부와 능력의 기준으로 평가되는 듯한 성대한 예식, 무분별한 청첩 초대장.
이벤트화한 예식절차 뿐만 아니라, 혼수, 예단에 이르기까지 국적불명의
이상한 혼례문화가 생겼으니 말이다.
세상에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잔치가 바로 혼례의 현장이라고 한다면
혼주는 성심껏 손님을 대접하고 편안하게 축복받는 자리를 만들어 주면
어떨까?
'축의금은 사절합니다.' 라고 써 붙이고 하객들을 맞았던 친한 친구의
딸 결혼식장에서의 상큼한 느낌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 자식 혼사를 통해 축의금을 조금이라도 더 걷을 요량인지 모르지만
잊혀졌던 인사들로부터 받는 청첩장을 대하며 나는 오늘도 허허로운
웃음을 짓게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