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바쁘게 살면서 치악산 자락에 별장을 짓고 시골 냄새가 좋다며
한달에 며칠씩 전원생활을 즐기는 지인이 한분 계시다.
몇 년전에 시골 집의 堂號를 하나 짓고 싶다는 청을 들었으나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던 차에 이번에 아호를 하나 얻었으면 하는 부탁을 받았다.
천학비재로서 그런 부탁을 받고 보니 선뜻 대답을 못하고 지내던 차에
시골 별장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자주 만나는 옛직장 사람들과 함께 집마당에서 여름 더위나 식히며
막걸리 한잔 하자는 청에 모두 즐거운 나들이가 되었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나와서 꼬불꼬불 산길로 10여키로를 들어가
아주 깊은 산속 계곡에 자리잡은 별장을 찾았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별장이 있는 곳 산 중턱을 통하는 산림도로를 따라
30분 정도 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며 상쾌한 녹음과 공기를 즐기며
지인에게 어울리는 산뜻한 아호를 구상하게 되었다.
여름날 치악산 자락의 깊고 계곡의 깊고 푸른 녹음, 가뭄에도 졸졸 흐르는
계곡물, 집 주변의 크고 아름다운 소나무숲, 그리고 정겨운 한낮의
맑고 푸른 하늘까지 어우러저 한폭의 동양화 같은 푸근한 느낌이
네게 다가 왔다.
나는 지인에게 작호에 도움이 될 몇가지 질문을 해 보았다.
그리고 "靑谷" 이라는 雅號를 지어 의미를 설명하니 당사자도
아주 만족하며 수락을 했다.
이달 월초에 다시 그분을 만나는 약속이 있다.
만날 땐 아호를 풀이한 "雉岳奇峰成靑谷 , 松下道人弄白雲 " 對句를
붓으로 직접 쓰고 조그만 낙관도 하나 새겨서 전달할 예정이다.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 " 던 아주 오래 된 광고 카피처럼
나이가 들어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는 삶의 변곡점을 만나기 어렵다.
은퇴를 하고 나서도 건강과 넉넉한 노후자금, 그리고 적당한 취미생활과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비슷한 연배의 지인처럼 나도 일상의
자신을 돌아보며 조금씩 넉넉한 삶의 여유를 찾을 나이가 되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