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년전에 시드니에서 살고 있는 아들이 직장 일로 서울에 1년 정도
파견근무를 하게 되어 13개월 된 손자를 데리고 귀국을 하게 되었다.
집에 아내와 단 둘이 사는 집에 아들 내외와 돌이 막 지나서 아장아장
걷기를 시작하는 손주와 함께 살게 되니 집안에 활력이 넘치게 되었다.
외국에서 손주가 자라다 보니 한국말을 배우기 어려울 것 같고, 사고나
행동 방식이 서양화 될 것은 뻔한 상황이라 아쉬움이 있었는데 잠시
라도 한국에서 머물며 우리 문화 속에서 자랄 기회가 되어 다행스럽고
결혼 7년 만에 얻은 귀한 손자이자 장손이라 한국인의 뿌리를 잊지
않는 사람으로 키우고싶은 욕심 때문이다.
20개월쯤 되어 활동량도 늘기 시작하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구도
크고 해서 집 근처 어린이집을 보내게 되었다.
처음엔 가족과 떨어지는 걸 싫어해서 걱정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또래들과 잘 어울리며 사회성도 좋아서 인성교육에 도움이 되었다.
나는 손주의 등하원을 맡아서 유모차를 이용 어린이집을 데리고
다니며 돌아올 때는 가능하면 바깥 활동을 조금씩 시키키 위해 걷기도
시키고 공원이나, 집 주변 안양천 같은 곳을 다녀 오기도 했고,
전철을 타고 조금 먼 곳까지 둘러보고 오기도 했다.
조금 커 가면서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고, 행동 반경이 넓어지면서
외부 활동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시내버스나 전철을 타고 시내도 갔다오고, 한강공원에도 가보고,
고궁이나 전시회 같은 곳도 둘러보기도 아며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도록 나름 노력을 했다.
그 손주가 26개월쯤 지나서 둘째가 태어나서 아이가 둘이 되고 보니
아이들에게 더 신경 써야 한 상황이 되었다.
아들은 시드니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되었으나 회사와 협의하여
서울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걸로 하고 몇 개월 연장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올해 초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하여 당분간
시드니 복귀는 미루고 내년초까지 한국에 머물 예정이다.
그러다 보니 큰 손자는 네살(만3세) 가 되어 일상대화가 가능한 수준의
말문이 트였고, 둘째 손자도 돌을 앞두고 있다.
손주들이 자라는 걸 보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11개월 된 둘째는 이제 걸음마를 몇 걸음 떼는 정도로 커서 방긋 방긋
웃고, 안아달라고 울기도 하고, 눈짓, 손짓으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얼마나 한국에 머물다 호주로 돌아갈 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한국인이란 뿌리와 긍지를 심어주는 역할이 내가 할 일이란 생각이
들어 되도록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얼마나 남을 지 모르지만 되도록이면 한국에서 살았던
기억들을 오랫 동안 간직할 수 있도록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
다음달이면 둘째 손자가 돌을 맞는다.
또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줄끼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