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자유인이 되다

tycoons 2023. 3. 17. 09:34

2004년 12월 27일 저녁 회사로부터 명예퇴직 통보를 받았다.

어차피 예상하고 있던 바이지만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1977년 12월1일 처음 시작한 직장에서 27년 1개월만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이 전무가 대전까지 내려와 회사의 구조조정 계획에

따른 부득이한 조치였음을 설명하며 구차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알았다."는 대답으로 짧은 대화를 끝냈다.

사무실에서 바로 짐을 싸고 본부 직원들과 송별회를 겸한 저녁을 먹었다.

몇몇 지점장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오기도 했지만 부담스럽다며 돌려

보냈다.   밤에 숙소의 개인 사물들을 정리하여 차에 싣고 다음날 아침에

청소까지 마치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후임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 인수인계는 관리팀장에게 위임하고

바로 서울 본사로 향했다.

경영진에게 이임 인사나 하려고  본사에 들렀으나 임원 16명을 명퇴

조치한  본사도 어수선하여 연관부서  몇 명에게만 작별을 고함으로써

회사와의 업무관계는 마무리하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여 아내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고 아내도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다음 날 나보다 보름 먼저 퇴직한 김부사장과  이번에 함께 명퇴한 몇명의

임원들이 점심을 함께 하였다. 모두들 불편한 표정들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백수 생활이 벌써 보름이 넘었다.

당분간은 쉬면서 쌓였던 업무 스트레스를 추스리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매일 3~4 시간 정도 운동을 하며 몸의  리듬을

찾는 중이다.

나는 지금 고교 동기들 모임인 靑藍會 친구들과 보름 일정으로 뉴질랜드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 공항에 와 있다.

다행히 퇴직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겨 바로 모임의 여행 일정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재 다소 혼돈 스러운 현실을 돌아보며 재충전의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른 친구들은 강남 공항터미널에서 만나서 수속하고 출발하는 관계로

나는 먼저 공항에 도착하여 여유롭게 침잠의 시간을 갖고 있다.

아내나 자식들에게 조금은 떳떳해 보이지 못하는 지금이지만 또 다른

기회의 시간을 위해 당당하게 맞서리란 각오를 해본다.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인으로서 앞으로의 나의 인생을 응원하면서...

 

2005.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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