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꽃 고무신

tycoons 2023. 3. 19. 09:51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가난해서 운동화는 엄두도 못 내던 어린 시절
고무신에 얽힌  이야기를  올려 놓아서 읽어보았다.
나도 남다른 경험이 있어 초등학교 시절 추억을 떠올려 본다.
초등학교 3학년때 검정 고무신이 너무 쉽게 닳고 망가지는 걸 보신
나의 어머니께서 여자 아이들이 신는 꽃 고무신을 사다 주셨었다.
나는 어떻게 여자 고무신을 신느냐고 어머니께 불만을 떠뜨렸지만
어머니는 신발만 튼튼하면 되지 남녀 신발 구분이 무슨 대수냐며 그냥
신으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사 주신 여자 꽃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등교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말았다.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이는 여자 꽃고무신을 신었대요!"
체육 시간엔 더 난리였다. 아이들이 나를 쫓아 다니며 남자가 여자 꽃고무신을

신었다고 놀려대는 것이었다.
당시 면소재지 근처에 사는 농촌지도소장 아들, 중국집 식당 아들, 면서기

아들 등 좀 여유있게 사는 집 아이들이었다. 요즘같으면 으시대기를 좋아
하는 아이들이었고 나로선 왕따가 될 뻔한 사건이였다.
결국 나는 집에 돌와서 어머니한테 화를 내며 신발을 벗어 던져 버렸다.
생활도 곤궁하고 물자도 빈약하고 품질도 많이 조악하던 시절 조금 더

질긴 여자 꽃고무신을 아들에게 신게 했던 부모의 마음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절약만이 최고의 미덕이고
국산품을 애용하라고 가르쳤던 그 당시엔 시골 아이들은 대부분 검정
고무신을 신었고 희거나 노란 고무신은 가격이 조금 더 비쌌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6키로 정도 되는 등하교 길을 왕복하며 꽤 깊은 개울도 
건너고 나무하러 산에도 다니다 보니 신발이 쉽게 닳아버리고, 물에 
떠내려가서 잃어버리기도 하고 나무 동갈이에 걸려 찢어지기도 했었다.
닳거나 찢어진 신발들은 5일장이 설 때에 부모님들이 장에서 때워서
다시 신을 수 있게 해주시고, 굵은 실로 꿰매서 신기도 했다. 
신발이 너무 빨리 단다고 질긴 꽃고무신을 사주셨던 어머니가 당시엔
무척 야속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검소하게 생활
하는 것은 그 시절부터  몸에 밴 버릇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풍요롭고 유명 브랜드 신발만 고집하는 젊은이들에겐 신기한
이야기이지만 운동화도 못신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어린 시절의
고향 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족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Hidcote Garden 수목원  (1) 2024.06.13
크리스마스 가족 여행  (2) 2023.12.28
손자는 해외동포  (0) 2023.03.05
내 인생 최고의 날은  (0) 2022.10.28
손자 이현이  (0) 202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