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청명이라 그런지 하늘도 청명하고 바람도 부드럽다.
하지만 나는 머리 속이 멍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경천동지(驚天動地)란 표현이 딱 맞는 날이다.
오늘은 이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파면된 날이다.
5개월 동안 온 나라가 혼돈 속에서 많은 시민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왔고 탄핵 찬반으로 진영이 나뉘어 국력을 소모전을
계속해 오다가 드디어 오늘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잣대는 오로지 헌법을 근거로 하여 시비를 가리고
111일간의 평의와 숙의를 거쳤다고 한다.
이번에도 대법관 8명의 전원 일치 의견으로 대통령 파면이
인용되었으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찍 소리도 못하고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입장이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법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전원일치 합의 판결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밀실에서 100일 동안 숙의하여 만장일치를 만들어 내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무슨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삼팔선 넘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만 가능하다고
들었던 만장일치 투표선거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만장
일치 판결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말이다.
과연 대한민국에서의 헌법은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와
역할을 하고 있는가?
耳懸鈴鼻懸鈴란 표현도 모자라 편법적으로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게 요즘의 이 나라의 입법기관이다.
국민의 선량이라는 국회에선 다수당의 필요에 따라 수많은
법률들이 편볍적으로 만들어지고 시행되고 있고, 기존의
법률들도 멋대로 해석 운용되고 있다는 걸 이번 재판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법관이란 자들이 만든 판결문을 들여다 보면 모두 언어의
유희들이다.
직접화법이 아닌 우회 간접화법으로,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애매한 표현으로 대중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판결
속에 숨겨진 본의를 찾기 어렵게 만든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인용은 그 정당성을 떠나
우리 역사에 또 하나의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밀실야합 판결이란 엄연한 사실이다.
얼마전 어는 한국사 강사의 ‘을사오적’이란 표현이 새롭게
떠오른다. 을사팔적이 되든 을사영웅이 되든 그건 훗날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
역사는 계속된다는 말처럼 이런 비슷한 사건들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길을 걸어선 안될 것이다.
개선하고 발전해 가는 모습이 진정 미래로 가는 방향이고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많고 많아서 백인백색이라고
하겠지만 통합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합이 필요한 때이다.
더 큰 휴유증이 없었으면 한다.
내가 살고 있고, 내 자손들이 살아갈 이 땅에서 오늘과 같은
비극적인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빌고 빌 뿐이다.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청명(淸明)에는 어떤 지역에선 ‘내 나무’라 하여 자녀가
혼인할 때 쓸 농을 만들 재목을 얻으려고 나무를 심었단다
오늘 청명 날엔 나도 손자 결혼할 때까지 오래 살아서 내
몸을 이끌고 결혼식장에 나갈 청려장(靑藜杖)이라도 만들 수
있도록 명아주 씨앗을 주문하려 한다.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강백세 (4) | 2024.12.24 |
---|---|
난 이렇게 산다우! (2) | 2024.12.01 |
붙이지 못한 편지 (0) | 2024.11.22 |
草上之風 (1) | 2024.08.27 |
절대 포기하지 마라 (0) | 2024.06.29 |